종교의 이념과 사회복지: 종교는 왜 가난한 이 곁에 머물지 못하는가?
종교의 본질은 사랑과 자비에 있다.
그러나 현실의 종교는 교세 확장과 건물 중심으로 흐르고 있다.
이제 종교는 신도가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을 향해야 한다.
![]() ▲ 황진수 박사 전) 한성대학교 총장권한 대행 ) 한국노인복지정책 연구소장, 본지 논설위원 |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기쁨, 즐거움, 행복보다 슬픔, 괴로움, 불행감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전 생애를 통하여 아무런 걱정 없이 오복(五福)을 누리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걱정거리가 있고, 숨겨져 있는 슬픔과 고통이 있다. 이러한 인간의 불행, 빈곤, 질병, 불안감 등 정신적 고뇌를 해결하고자 등장한 방편(方便)이 종교다.
전 국민을 「복음화」시키고
「극락정토」로 만드는 것은 종교가 가지고 있는 궁극적 목표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은 「권선징악」, 즉 사회의 나쁜 것을 억제하고 착한 일을 권하는 측면에서 종교를 이해하고 있다.
종교가 가지고 있는 이념은 각각 다르긴 해도 공통분모는 ‘사랑과 자비’다. 사랑과 자비는 국민의 행복을 추구하는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과 사회복지의 이념과 맥을 함께한다. 그러니까 종교의 목적과 사회복지 이념은 목표가 같은 뿌리(同根)로 해석해도 큰 무리가 없다.
2025년도 문화체육관광부의 종교 현황에 의하면 개신교 20%, 불교 16%, 천주교 11%, 기타 1%이며 무교가 51%로 절반을 넘는다.
또 교역자의 현황을 보면 개신교 113,000명, 불교 142,000명, 천주교 6,700명, 원불교 2,300명이며, 교당(교회, 사찰 등)의 수는 기독교 55,000개소, 불교 15,000개소, 천주교 1,700개소, 원불교 500개소 등이다(Gemini; 통계 참고). 여기에는 미등록 시설이 포함되어 있지 않으므로 숫자는 더 늘어날 수 있다. 이 통계를 보면 국민의 약 30%가 범기독교 신자이고, 종교 기관에서 일하는 교역자, 승려 등의 숫자는 모두 합쳐 264,000명이다.
종교 교당 수만 해도 72,200개소나 된다. 이는 특정 종교를 국교로 하는 나라 이외에 이렇게 많은 교당 수와 교역자 수를 가진 나라도 흔하지 않다.
종교가 추구하는 목적이 사회복지 이념과 공통분모가 있다고 했는데,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종교기관은 사회복지에 큰 관심이 없다.
종교기관을 이용해 선교나 포교를 할 목적으로 지자체로부터 수탁(위탁)받아 경영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지금은 법적으로 선교·포교를 금지하고 있다.
종교기관 예산을 보면 수입의 2%, 많게는 8%를 복지 예산에 편성하고 있다.
지출의 큰 부분은 교당의 신축이나 포교, 선교 활동 등 종교 행사에 쓰이고 있다. 거리에 쓰러진 사람, 죽어가는 사람이 많은데 종교 건물만 웅장하게 짓는 데에 정성을 쏟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267만 명의 최극빈층이 있다. 이른바 기초수급 대상자들이다. 이들은 복지 정책의 혜택을 받긴 하지만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다. 종교기관은 국가원수를 위한 기도회처럼 잘 먹고 잘사는 사람들을 위한 종교 집회보다 질병과 빈곤 속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를 해야 한다. 부자들은 종교기관이 기도를 해주지 않아도 잘 먹고 잘 살기 때문이다.
여기에 제안을 한다면 72,200개의 종교기관에서 불우한 이웃 한 사람씩만 보살펴 준다면 어떨까. 이제 종교기관의 핵심이 교세 확장이 아니라 사회 행복(복지)이라는 인식이 확산될 시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