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수 박사 복주(푸저우 리포트] 화려한 현판보다 위대한 돌판, ‘더불어 살기’의 미학을 마주하다
삶의 기록을 향한 여정: "여행은 단순히 풍경을 눈에 담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과정입니다. 전 한성대 총장 권한대행 황진수 박사가 푸저우 삼방칠항의 고즈넉한 골목에서 마주한 '살아있는 규칙', 문유방 향약비를 소개합니다."
세월의 풍파를 견디며 담장 속에 묵묵히 박혀 있는 문유방 향약비(文儒坊 鄕約碑)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화려한 정원이나 웅장한 대저택에 비하면 초라해 보일지 모를 이 작은 돌비석 앞에서의 시간은, 마치 140여 년 전 청나라 말기 푸저우 사람들의 숨결을 직접 느끼는 듯한 기묘한 경험이었습니다.
![]() ▲ 문유방 향약비(文儒坊 鄕約碑)의 본체:거친 돌의 질감 속에 140여 년 전의 약속들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사진 속 비문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보면 첫 번째 줄: 坊墻之內 不得私行開 (방장지내 부득사행개...) "담장 안쪽으로 사사로이 (문을) 내지 말 ©Newsly |
가장 먼저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비석이 박물관 유리창 안이 아니라, 여전히 사람들이 오가는 골목의 담장 일부로 남아 있다는 점입니다. 1881년에 세워진 이 비석은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당시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주민들이 서로 약속했던 살아있는 규칙을 적어 놓은 돌비석입니다.
![]() ▲ 살아있는 역사 문화 거리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즐기는 시민들 ©Newsly |
그 내용은 참으로 소박하지만 공동체의 일원이면 스스로 자켜야 되는 자명등과도 같습니다. 그 내용은 "담장에 함부로 문을 내지 마라", "길거리에 물건을 쌓아두지 마라"와 같은 구절들입니다. 마치 현대 도시의 아파트 관리 규약이나 골목길 주차 분쟁이 떠올라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서로를 배려하며 질서를 지키려는 노력은 변함이 없다는 사실이 무척 친숙하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특히 공동 문명 규약이라는 설명처럼, 개인의 편의보다는 화재 예방(疏虞)과 공공의 통행을 우선시했던 푸저우 조상들의 지혜가 돋보였습니다. 좁은 골목길이 미로처럼 얽힌 삼방칠항에서 이런 약속이 없었다면, 아마도 이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오늘날까지 온전히 보존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비석에 새겨진 정갈한 한자 한 자 한 자는 단순한 글자가 아니라, 이웃 간의 신뢰와 책임감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문유방 향약비 앞에 서서 잠시 눈을 감고 상상해 보았습니다. 아침 일찍 골목을 청소하던 노인, 목재를 옮기다 비석을 보고 길을 터주던 일꾼, 그리고 이 비문을 읽으며 공중도덕을 배웠을 아이들의 모습 말입니다. 화려한 금칠을 한 현판보다도, 때 묻고 마모된 이 돌판이 더 위대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것이 삶의 진정성을 담고 있기 때문 아닐까요?
![]() ▲연못 위에 세워진 화려한 정자 몹씨 평화롭다. ©Newsly |
여행이란 단순히 멋진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과정이라는 것을 문유방 향약비는 일깨워 주었습니다. 삼방칠항의 수많은 보물 중에서도 이 비석은 가장 작지만, 가장 단단한 공동체의 뿌리를 보여주는 최고의 볼거리였습니다. 아마 저는 푸저우를 떠난 후에도 길가에 어지럽게 놓인 물건들을 볼 때마다, 1881년 문유방 사람들이 새겼던 그 정직한 약속들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 ▲삼방칠항 주변이나 푸저우 시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대한 반얀트리(융수, 榕树) 가로수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