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라는 이름의 이정표: 당신의 기도는 안녕하십니까?
![]() ▲ 전 한성대학교 총장권한 대행 황진수 박사, 현) 한국노인복지정책 연구소장, 본지 논설위원 |
'아일리쉬 브레싱(Irish blessing)'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일랜드 사람들이 드리는 소박한 기도를 정리한 것인데, 그 내용은 참으로 정겹습니다. "내 손에는 항상 일거리가 있게 해 주소서", "아침에 일어나면 동쪽 창에 햇볕이 비추게 해 주소서", "비 온 뒤에는 하늘에 무지개가 뜨게 해 주소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을 찬미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하게 해 주소서"라고 말이죠. 거창한 부나 권력이 아닌, 평범한 일상의 안온함과 건강을 비는 이 기도문에는 삶을 대하는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반면, 우리네 기도는 어떤가요. "남북통일이 되게 해 주소서", "취직이나 승진을 하게 해 주소서", "돈을 많이 벌게 해 주소서". 우리의 기도는 그 내용만큼이나 삶의 목표치 또한 무척이나 높고 거창합니다. 행복의 기준점 자체가 다른 나라보다 훨씬 높게 설정되어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기준이 높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도달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높게 설정된 목표를 향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목표에 미치지 못할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스트레스라는 늪에 빠집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낙인찍기 시작하죠. 사람들은 자신이 바라는 욕구가 충족될 때 행복하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의 욕망이 끝이 없다는 점입니다. 하나의 욕망을 성취하면 곧바로 또 다른 욕망이 고개를 들고, 만족의 유효기간은 찰나에 불과합니다.
결국 행복은 외부적 조건인 경제적 성취나 사회적 성공에만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자신의 내면세계를 밝히는 마음의 그릇 안에 있습니다. 3중고의 장애를 가졌던 헬렌 켈러가 "신이 나에게 3일간만 눈을 뜨게 해 주신다면, 꽃과 새를 보고 싶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싶다"고 했던 고백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그녀에게 행복은 결핍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누리는 평범한 일상의 발견이었습니다.
우리는 두 눈을 뜨고 건강하게 살아가며, 재산을 소유하고 있음에도 끊임없이 '욕망의 노예'가 되어 불행을 자처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이제는 국민총생산(GNP)을 넘어 국민총행복(GNH)을 논해야 할 때입니다.
경제적 지표가 우리의 삶을 완벽히 대변해주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외부의 성취보다 내면의 만족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하루, 거창한 미래를 꿈꾸며 현재를 희생하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자신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져보길 바랍니다.
“당신도 지금 행복하십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