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것, ‘건강하고 즐겁게 오래 사는 삶’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건강 수명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제 장수의 목표는 생일의 숫자를 늘리는 데서 벗어나 질병과 장애의 시작을 늦추고 노년의 독립성을 지키는 데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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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래 사는 것을 축복이라고 말한다. 의학의 발달로 암과 심장병, 뇌졸중의 생존율이 높아졌고 과거라면 목숨을 잃었을 질병도 관리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오래 산다는 것이 반드시 오래 건강하게 산다는 뜻은 아니다. 장수의 진정한 가치는 생일의 숫자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얼마나 자유롭게 걷고 생각하며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국제학술지 《란셋 공중보건(The Lancet Public Health)》에 발표된 세계 질병 부담 2023 연구에 따르면 세계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1990년 64.6세에서 2023년 73.8세로 늘었다. 같은 기간 건강 수명도 55.9세에서 63.1세로 증가했지만, 기대수명의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 결과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의 차이인 ‘질병 격차(morbidity gap)’는 세계적으로 8.8년에서 10.7년으로 확대됐다. 오늘날 인류는 생애의 약 14.5%를 질병이나 통증,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셈이다.
한국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한국인의 질병 격차는 1990년 9.4년에서 2023년 11.6년으로 2.2년 늘어났다. 조사 대상 204개 국가·지역 가운데 질병 격차가 큰 순서로 48위였다. 세계 평균 10.7년보다 0.9년 길다. 세계적인 장수국가가 된 한국인의 삶 뒤편에 평균 11년이 넘는 질병과 장애의 시간이 놓여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수치는 모든 사람이 생애 마지막 11.6년을 계속 병상에서 보낸다는 의미는 아니다. 성인기 전체에 걸쳐 경험하는 질병과 장애의 부담을 평균한 것이다. 문제는 건강 악화가 노년의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중년부터 조금씩 쌓인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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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수명을 위협하는 것은 암과 심장마비 같은 치명적 질환만이 아니다. 허리 통증과 관절질환, 우울증과 불안, 노인성 난청, 낙상과 골절처럼 당장 생명을 빼앗지는 않더라도 일상의 독립성을 무너뜨리는 질환이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계단을 오르고, 장을 보고, 숙면하고, 손주의 목소리를 듣는 평범한 능력이 바로 건강한 장수의 기준이다
장수의 숨겨진 비밀은 특별한 불로초에 있지 않다. 혈당과 체중을 관리하고 담배를 끊으며 꾸준한 운동으로 근육과 균형 감각을 지키는 데 있다. 청력과 인지 기능을 살피고 우울과 불안을 조기에 치료하며, 통증 관리와 재활·낙상 예방을 일상적인 건강관리로 받아들여야 한다.
인간은 모든 질병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발병 시기를 늦추고 증상을 줄이며 타인의 도움 없이 살아가는 기간을 늘릴 수는 있다. 다음 의학 혁명은 몇 살까지 살았는가가 아니라 몇 살까지 걷고, 듣고, 생각하며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었는가로 평가될 것이다.
오래 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수명에 건강을 더하고, 건강에 독립성과 의미를 더하는 것, 그것이 초고령사회 대한민국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장수가 아닐까?
황진수 박사, 전 한성대학교 총장권한 대행 현) 한국노인복지정책 연구소장, 본지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