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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 Editor’s letter

김유진 편집부회장

디지털 시대 노년학 연구 : 연령차별주의와 불평등 심화에 맞서는 연구가 필요하다.
ICT 발전에 따라 사회 전반에 걸쳐 디지털화가 진행 중이다. 노인복지계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코로나 19사태 속에 다양한 기술과 돌봄체계의 결합이 가시화되었다. 응급안전안심서비스가 확대되었고, 효o이, 다o이 등 인공지능 탑재 돌봄로봇과 So, 네oo 케어콜 등의 AI 안부전화, 그리고 건강 모니터링 스마트 워치 등까지 다양한 디지털 돌봄서비스가 등장하였다. 그리고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앞다투어 이와 같은 디지털 돌봄서비스를 확대 제공하고 있다.

노년학계에도 디지털 기술 관련 연구가 증가하였다. 이들 연구는 주로 두 가치 차원에서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바로 디지털 격차를 다루는 연구와 노년공학(gerontechnology)에 관한 연구이다. 디지털 격차에 관한 연구들은 고령자의 컴퓨터, 모바일 접근성 격차는 이전에 비해 줄어들었으나, 디지털 활용 및 역량 격차는 다른 연령대에 비해 여전히 크다는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 결과에 근거하여 고령자의 디지털 역량 강화 교육의 활성화를 강조한다. 노년공학 관련 연구들은 저출산⋅초고령화 시대에 디지털 돌봄서비스가 고령자의 건강과 복지증진을 위한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 연구와 관련 현상에 대한 국외의 반응은 이렇다고 한다; “디지털화로 장수 경제 활성화(digitally-enabling the Longevity economy)” (Dalmer et al., 2022, p.78에서 재인용). 우리나라에서의 반응은 어떨까? 위의 반응과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 「디지털포용법」 제정 추진, 「스마트 의료 및 돌봄 인프라 구축」과 같은 정책, 그리고 「100세 시대 일자리⋅건강⋅돌봄체계 강화」 등의 국정과제와 맞물려 관련 연구는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그런데, 노년학 연구자, 특히 사회노년학, 노인복지학 연구자들은 이런 현실에 대해서 아마도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질 것이다. “급속한 디지털화로 인한 변화는 노년의 삶을 과연 어떻게 바꾸어 놓을까? 이로 인한 사회변화는 기존의 사회변화와 어떻게 다르고 무엇이 새로운가?”, “디지털 격차는 단순히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경제적, 정치적인 상황이 얽혀있는 것인데, 모든 노인이 키오스크 이용할 수 있게 된다고 해서 고령자 정보격차 문제가 해결되는 건가? 왜 노인복지관 등에서는 키오스크 교육에(만) 그렇게 올인하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디지털 기술이 연령차별과 불평등 심화를 더욱더 악화시키지 않을까? 연구자로서, 사회구성원으로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디지털 기술 전반에 걸쳐 연령주의와 ‘기술이 답이다.’라는 시각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것에 대해 우려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격차를 다루는 연구들은 주로 디지털화가 자연스러운 젊은 세대와 고령자를 비교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 연구에서 노인은 기술활용에 뒤처져 있거나 다른 사람의 지원에의존하거나, 또는 기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신중년과 같은 이미지로 그려진다. 한편, 디지털 복지기술 관련연구는 ‘소셜로봇, 보조기술 등이 아프고 취약하고 노쇠한 노인의 건강 문제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다.’라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경향이 있다. 모든 연구가 부지불식간에 그러한 영향을 미칠 위험이 있지만, 특히 최근 급속한 디지털화 움직임 속에 진행 중인 연구들이 노화에 대한 이분법적 시각을 강화할 여지가 크다. 이들 연구에 스며 있는, 노년의 다양성과 교차성에 대한 미흡한 인식이 기술 설계와 구현, 활용방안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고령친화기술은 제4시기 노인의 것이라며, “I’m not that old.”라고 하는 현실, 즉, ‘고령자도 노인을 위한 기술을 최대한 멀리하고 싶어 한다.’라는 역설적인 현상도 발생한다(Neven, 2010).

또한, 이들 연구의 밑바탕에는 노화, 노인을 기술에 의해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는 시각이 자리 잡고 있다. ‘노년의 여러 가지 어려움, 특히 질병과 무위의 문제를 기술이 해결할 수 있다!’,‘인구 고령화에 따른 사회적 부담 가중의 문제, 기술혁신만이 답이다!’라는 시각 말이다. 이것은 다양한 사회경제적, 정치적 차원을 무시한 채 기술을 사회변화의 유일한 동력의 틀로 보는 시각으로서(Wyatt, 2008), 자동화, 기계화된 의사결정 및 기술적 독립성을 지나치게 과장하는 경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객관적’, ‘과학적’의 탈을 쓴 채, (신자유주의적) 우리 사회에 널리 펴져 있다. 그리고 이런 시각은 산업계 현장, 정치계뿐 아니라 학계에도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Neven & Peine, 2017).

대다수가 ‘이것은 잘잘못을 따지고 논의할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당연히) 따라야 하는 것’이라고 여기며, 이것의 폐해와 위험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 사이에, 이런 기술 솔류션 담론이 노화에 대한 인식과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 필자의 주장이 너무 지나친 해석일 수도 있다. 그러나, 노년학 연구자는 이와 같은 담론에 맞설 대안 담론 또는 기술 솔류선주의가 판치는 세상에 브레이크를 거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다면, 그런 작업은 무엇이고,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첫째, 먼저, 무비판적으로 복지기술을 환영하지 않으며, 첨단기술 활용의 폐해에 대해 경계하고 점검하며, 비판 적 목소리를 내야 한다. 예를 들어, 복지기술이, (정부가 원하는 대로, 정말), 비용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나? 돌봄인력의 관리와 지도 병행 없이는 기기는 무용지물일 수 있다. 또한, 돌봄인력의 보이지 않는 수고를 엄청나게 가중시키기도 한다(김유진, 박순미, 2020; Strengers & Kennedy, 2020). 그리고 저소득 노인 돌봄 목적으로 각 지자체는 앞다투어 돌봄로봇을 구매하고 있다. 이것은 과연 얼마나 괜찮은 현실인가? 부유하고 자원이 많은 노인은 사람이 돌보고, 빈곤하며 취약한 노인은 AI 반려로봇이 돌보는 사회, 지금 우리 사회는 이미, 아마도, 불평등한 미래현실을 담은 SF 영화에서 보던 그런 사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다른 문제도 있다. 디지털 돌봄 명목하에, 24시간, 실시간으로 수집된 자료는 누가, 어떻게 관리하고 있고,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는가? 자기추적(self-tracking) 이라고 하더라도 디지털 모니터링 과정에서 발생하는 생체 관련 자료수집이 얼마나, 어떻게 몰인격화, 노화 평가절하, 불평등 심화를 초래할지 우리는 아직 모른다(Chu et al., 2022; Dalmeret al., 2022).

둘째, 기술 분야에 만연한, 나아가 사회 전반에 걸쳐 심화 중인 노화에 대한 이분법적이고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그리고 디지털 역량을 갖춰야 할 필요성을 연령차별주의 타파, 그리고 연령통합 사회 구현 차원에서 제기해야 한다. 여기서 디지털 역량이란, 단순히 PC 이용 능력이나 모바일 디지털기기 이용능력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이 글에서 주장하는 것과 같은, 디지털 사회 전반에 걸쳐 너무나 자연스럽게 스며있는 연령주의적, 기술 중심적 사고방식을 비판적으로 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AI 기술이 최대한 연령차별주의적이 되지 않도록, 공정한 알고리즘 개발이 되도록, 노년의 다양성과 관심사 및 가치를 담을 수 있도록, AI 훈련에 사용할 수 있는 충분하고 다양한 고령자 관련 데이터를 구축해야 한다. 또한, 정부, 기업, AI 연구자와 개발자, 노년학 및 사회과학자, 윤리와 법률학자, 기타 이해관계자와 적극적으로 협력하며, 빅테크 기업에 대항할 수 있는 연대 네트워크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인공지능과 알고리즘 등으로 인한 차별 견제를 위한 규제 마련을 위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Chu et al., 2022; Lan Fang, 2022).

셋째, 노인과 기술이 공동작업(co-shaping) 할 수 있도록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연구의 전제가 되는 시각과 연구 방법적인 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노인과 기술은 일방향적인 관계(‘노인의 문제를 기술로 해결한다.’)가 아니다. 노인이 기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는가에 따라 기술의 발전과 활용방안이 정해져야 한다(Hagberg, 2004). ‘성공적 노화’를 표상하는 신중년이 아니어도, 기술에 정통한 자(tech savvy)가 아니어도, 어떤 고령자든 기술의 공동창조자이자 사용자로서 역할 할 수 있다(Bergschöldet al., 2020; Joyce & Loe, 2010; Lavenir, 2022). 연구 방법과 결과 활용 면에서 반면교사로 삼을 것이 있다. 많은 복지기술 관련 연구에서 사용자의 경험을 강조하며, 디자인 씽킹식 또는 참여연구 방법을 활용한다. 그런데, 주로 신중년을 대상으로 하는 표본 편향성의 문제가 있거나, 고령자의 참여는 인터뷰 등을 통한 자료수집에 그치고, 실제 제품 의사결정에는 참여하지 않는 경향이 큰 것 같다.

앞으로 「한국노년학」에 디지털 기술 시대의 빛과 그림자를 균형 있게 다룬 연구들이 많이 게재되길 바란다. 디지털 기술 시대는 연령차별과 불평등 심화의 위기이자, 어쩌면 진짜 건강한 노화를 누리는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판적인 시각을 갖춘 연구자와 현장실천가들의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김유진. (2022). 디지털 시대 노년학 연구: 연령차별주의와 불평등 심화에 맞서는 연구가 필요하다. 한국노년학, 42(6), 1047-1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