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의 풍경이 바뀐 시대, 김 할머니의 슬픈 기도
황진수 박사 한성대학교 전 총장권한대행
필자에게 메일보내기 | 기사입력 2026/03/10 [17:45]
가족에게서 밀려난 한 노모가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원망이 아닌 기도의 자리였다.
김 할머니의 조용한 두 아들을 위해 바친 2만 원의 눈물 헌금은 오늘 우리 사회의 효(孝)를 다시 묻고 있다.
![]() ▲전 한성대학교 총장권한 대행 황진수 박사, 현) 한국노인복지정책 연구소장 |
부산에 살고 있는 김순례(84, 가명) 할머니는 젊은 시절 남편과 사별하고 슬하에 두 아들을 키웠다. 갖은 고생을 다 하면서 두 아들을 대학까지 졸업시켰다. 큰아들은 공부를 잘해 서울의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해 잘 나가고 있었으며, 작은아들은 부산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었다.
큰아들은 명절 때마다 “어머니, 나이도 드셨고 건강도 안 좋으시니 이제는 서울에서 제가 모시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으며, 전화로도 비슷한 말을 하곤 했다. 김 할머니는 큰아들이 효자라 생각하며 부산에 있는 집과 약간의 부동산을 처분하고 큰아들 집으로 들어갔다. 손자, 손녀들을 돌보며 재미있게 살면서 행복해했다.
그러던 어느 날, 큰아들은 다니던 대기업 직장을 그만두었다며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이 처음에는 잘되는 듯하더니 얼마 후 문을 닫게 되었고, 큰아들은 낙심한 채 술로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어느 때는 문을 닫고 술만 마시며 식구들에게 술주정도 했다.
이를 지켜보던 노모 김 할머니가 “아들아, 이제 술은 좀 줄이렴” 하고 타이르듯 말했습니다. 그러자 큰아들은 “어머니가 제게 술 한 잔 사주신 적이 있습니까? 왜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하십니까”라며 언성을 높였습니다. 이어 노모가 가져온 돈이 들어 있는 트렁크 가방을 내던지며, 당장 나가 달라고 말했습니다. 더 서글픈 것은 큰며느리와 귀여워해 주던 손주들까지 아무도 말리지 않고 물끄러미 보고만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김 할머니는 그날로 보따리를 들고 부산에 사는 작은아들 집으로 갔다. 그런데 노모가 온 후부터 작은아들 부부는 매일 부부싸움을 했다. 작은 며느리는 “당신은 작은아들이라 시어머니를 모시지 않는다고 결혼할 때 약속하지 않았느냐. 이게 웬일이냐”라고 하며 다투었다.
또 작은 며느리는 불교 신자이고 노모는 기독교 신자라 서로 맞지 않는다고 트집을 잡았다. 결국 작은아들은 “어머니가 우리 집에 오신 후 집안이 어지러우니 나가시라”며 짐 보따리를 내주었다.
갈 곳이 없다고 생각한 김 할머니는 농약을 마시고 죽어야겠다고 마음먹고 농약을 샀다.
죽기 전에 다니던 교회에 가 마지막으로 기도하려 했는데, 목사님이 “얼굴이 왜 그러십니까? 아주 안 좋아 보입니다”라고 물었다.
노모가 자초지종을 말하며 죽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드리러 왔다고 하자, 목사님은 “그렇지 않아도 시골의 한적한 교회로 가려고 합니다. 그곳에서 일할 할머니를 찾고 있으니 같이 가시지요”라고 하며 차에 타라고 했다.
시골 교회에 도착한 할머니는 치맛속에 숨겨 두었던 2만 원을 꺼내면서 1만 원은 큰아들을 위해, 나머지 1만 원은 작은아들을 위해 헌금했다.
애지중지 키운 자식에게서 버림받다시피 쫓겨난 김 할머니가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이 영상처럼 떠오른다. 그리고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이 시대를 살아온 대한민국 노인들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우울하다. 대한민국의 모든 어머니가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효도의 풍속도 달라지고 있다.
효행은 만 가지 행동의 근원이라 했는데, 김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여러 생각이 떠오른다.


